2011년, 똥이라도 먹겠다는 결심

4년전 오늘 쓴 글을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2015년 현재, 나는 다행이도 똥을 먹지 않고도 3년이 넘게 싱가포르에서 잘 살고 있다. 삶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멋지게 펼쳐졌지만,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 아니고 현재 진행중인 모험이야기다.

2011년 말,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졸업을 앞두고 있었다. 나는 토익 870, 경영학 전공의 취업 준비생이었다. 많은 멘토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그것을 내가 알았으면 내가 멀쩡하게 4년제 대학을 졸업하지도 않았을거다. 여차저차해서 내가 하고 싶은 직업, 가고 싶은 회사를 알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오래가지 않아 그것은 사실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 회사라기보다는 사람들 눈에 좋아보이는 일, 회사를 ‘나도’ 원할 뿐임을 알게 된다. 한국에서 평범하게 자라서 평범한 교육을 받고 시키는대로 열심히 살아온 사람에게 갑자기 주어지는 ‘하고 싶은 일을 해라’라는 주문은 비현실적이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겠는 와중에, 딱 하나 정말 원하는 것이 하나 있었다.

“외국에서 사는 것”

당시 외국에서 살고 싶었던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유학생 친구들이 쉽게 대학을 들어가는 것을 보며 느꼈던 현 체재에 대한 배신감,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비슷한 일이 빈번할 것 같다는 생각, 제조업 기반의 한국 회사들이 살아남을 길은 글로벌화, 수출밖에 없는데 그런 일을 하려면 당연히 가장 필요로 되어지는 능력은 외국 경험과 외국어일거라는 현실적 생각도 있었다. 또한 외국 여행을 할때마다 느꼈던 자유, 다양한 생각들을 주고받으면서 내 사고의 틀이 넓어지면서 느껴졌던 기쁨에 대한 기억들도 동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의 변수가 없는 삶, 예측가능한 삶을 계속 살았을 경우에 보여지는 예측가능한 미래에 대한 공포가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의 경쟁이 지쳐서 저녁이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외국으로 가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더러운 경쟁 끝에 있는 미래가 내가 살고 싶은 미래가 아니었다는 것이 외국에서 살고 싶은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럴바에야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내가 살고 싶은 미래가 있는 가능성을 택하고 싶었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삶에 큰 변수가 필요했다. 이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여서 나는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들며 살아도 외국에서 사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다시 재강조하자면 내 영어는 결코 외국에서 일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었으며 딱히 이렇다할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말을 제대로 못하는 경영 전공생을 외국에 있는 회사가 현지 사람들을 제치고 뽑아줄 이유가 무엇인가? 맥도날드에서 햄버거를 만든다고 해도 맥도날드가 현실적으로 나를 고용해줄 이유가 없었다. 이런 저런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사이에 공채시즌이 다가왔고, 나는 그렇게 등떠밀려 여기저기 공채를 지원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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