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새 투잡을 뛴다.

(사진에 대한 설명: 드디어 퇴사한다고 매니저에게 양말을 선물받고 도비옷까지 입었던 몇달 전이 무색할만큼 요새의 나는 더 열심히 일하는 회사요정, 찐도비가 되었다는 슬픈 이야기이다.)

나는 요새 투잡을 뛴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늦게까지 일한다. 그리고 저녁 및 주말에는 나의 두번째 직업인 마케팅 컨설팅관련 업무를 한다. 그리하여 요새 나는 개인시간이 거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일주일에 4일은 술마시며 하루는 꼭 클럽을 가고 놀았던 예전의 쌈빡하던 나는 어디로 사라졌는가?! 

여기에 불타는 연애까지 하고 있는데, 다행인 점(?)은 장거리 연애라는 것이다. 기술의 진보의 혜택으로 우리는 왓츠앱 영상통화를 켜놓고 서로의 얼굴을 가끔 쳐다보며 각자 일을 한다. (남자친구는 본인 스타트업 준비까지 포함해 일이 세개다.)

물론 투잡은 Haulio에 조인할 때 창업자에게 미리 말을 하고 허가를 구한 부분이다. (신뢰가 중요하니까!)

두번째 일은 이전 회사에서 근무했을 때 두 단계 위의 보스가 퇴사후 다른 회사의 APAC 마켓 지사장이 되었는데, 나에게 마케팅을 해줬으면 한다고 여러번 요청을 했었다. 고려해보겠다고 하고 미루다가, 그러면 정직원으로 입사는 어려우니 컨설팅처럼 도와드린다고 했다. 물론 단순 거절하기 힘들어서 이걸 수락한 건 아니고, 나도 그 과정에서 배우고 싶은 것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락을 했다가, 생각보다 전력소모가 많은 미국산 가전제품처럼 나의 시간을 빨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덕분에 요새 배우는 것도 많고 생각하는 것도 정말 많다. 러닝이 두배다.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투잡을 뛴다:

오늘 마케팅일 관련해서 인플루언서에게 연락을 했는데, 싱가폴의 40대 요리 블로거인 그녀는 알고보니 한국회사 SK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둘다 투잡을 뛰고 있었고, 나는 한국인이고, 그녀는 한국 회사에 근무하는 인연이 넘나 재밌다며 짝짝꿍이 맞아서 얘기를 했다. 그녀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생각보다 투잡을 뛰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한다. 우리 동료 중 하나는 F&B 컨설팅을 해주고 있고, 그게 또다른 일을 불러와서 도대체 몇개의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취미가 뚜렷하거나, 분야가 명확한 사람들은 좀 더 수월하게 두번째 프로젝트를 구하는 듯하다.

누군가 나에게 본업이 아닌 일로 페이를 한다는 것은 묘한 안정감을 준다:

슬픈 사실은 내가 투잡을 뛰어도 예전에 대기업 하나 다닐때보다 받는 돈은 적다. 그렇지만 시간은 훨씬 더 많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마음은 덜 초조하다. 이게 무슨 미친 노예근성인지 모르겠지만, 한쪽에서는 가파른 러닝커브로 새로운걸 배우고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내가 잘하는 것으로 돈을 벌고 있으니까 아무리 한치 앞이 안보이는 세상이지만 예전에 대기업 하나에서 일했을 때보다 든든하다. 

직원의 마음으로 일하기 힘든것은 때로는 좌절스럽다:

마케팅 컨설팅을 해주기로 하고 돈을 받으면, 그것만 해주면되는데 사람 뽑는거 도와주고, 리테일러 소개시켜주고, 싸게 뽑을 수 있는 사람을 왜이렇게 비싸게 주고 뽑냐고 고객(혹은 예전 보스)을 닥닥하는 나를 보며 난 스스로에게 좌절했다.

사장이 아닌데 왜 굳이 사장의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지? (물론 사장의 스트레스와 비할바는 못되겠지만)

주변에 월급은 내 세배(!) 가까이 받으면서 ‘일은 일이지’라며 무미건조한 말을 던지고 자기 취미생활을 즐기는 사람을 보며 나는 내가 바보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자문했다. 나는 왜 그런 마음으로 일을 대하지 못하는가? 왜 나는 굳이 일에서 Passion을 찾아야하고 몸과 마음이 일치시키고, 시간을 통째로 들이붓고, 내 성에 차지 못하면 그렇게 좌절하다가 번아웃을 겪는가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왜 나는 좀 더 편하게 살 수 있는 인간이 못되는지가 개탄스럽다. 나는 오늘도 일로 자아실현을 하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다.

부처님이 보셨으면, 10일의 침묵명상을 다 어따 팔아먹었냐고 한소리하셨겠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그걸로 억울해하고 있으니, 나는 못난 중생이다. 


프리랜서 시장이 열린다고 했는데, 난 결국 트랜드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인가보다.

다만 한껏 성장한 내가 두개의 일을 해도 그 이전 하나의 일이 주는 페이를 못따라 간다는 것은 노동시장에서 개인의 역량보다는 기회에 의해 많은 것이 좌우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큰 회사의 일은 프로세스 덕분에 훨씬 수월했는데, 없는 프로세스를 만들며 일해야하는 작은 회사는 미션 임파서블을 한껏 요구하는데 보상은 더 적다니! 보상은 결코 개인의 역량을 대변하지 않는다. 많이들 그렇게 착각하고 거기에 상처받지만…

그래서 이런 혼탁한 세상에서 개인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내가 왜 이러고 살고 있는지 ‘목적’을 단디 챙기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자, 앨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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