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은 평당가치로 귀결돼”​

나에게는 싱가포르에서 보기드문 훈훈한 외모와 허우대를 가진 존이라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다. 그리고 역시 안전한 직장을 선호하는 일반적인 싱가폴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다소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약 8년전, 싱가폴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그는 지금은 소리없이 죽어가는 공룡 기업이지만, 당시에는 명문대생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꼽는 회사의 management trainee로 입사했다. 싱가폴을 포함한 전 세계 다양한 나라의 trainee들과 함께 다양한 나라에서 일하며 엘리트 코스를 쭉쭉 밟아나가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프로젝트를 하느라 호텔에 장기 투숙을 하고 있었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늘 보는 남자와 우연히 대화를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남자는 역시 세계적인 제약회사에 다녔던 사람인데, 필리핀에 사업 기회를 포착하고 퇴사 후 필리핀에 와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흥미가 생겼던 존은 그 남자와 술 한잔을 하며 얘기를 나누었고, 마침 재무전문가가 필요했던 남자는 존에게 회사를 조인해달라고 제안한다. 그렇게 된다면 존은 4번째 멤버였다. 큰 기업에서 갑자기 스타트업으로 점프를 하기가 망설여졌던 존은 일단 가시적 성과가 날 때까지 투잡으로 계속 도와주다가 이내 풀타임으로 조인을 하게 된다. 

제약회사 남자가 봤던 기회는 이러했다. 

병원에 가면 의사가 컴퓨터로 모든 것을 기록하고, 약의 처방까지 모두 컴퓨터로 전산화가 되어있는 한국, 싱가폴등의 선진국과는 달리, 필리핀의 많은 약국 및 병원에는 컴퓨터라는 시설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그래서 병원에서 의사가 민간인은 도무지 알아볼 수 없는 글씨체로 처방전을 종이에 써주면 그걸 약국으로 가져온다. 역시 약사만 읽을 수 있는 처방전을 약사가 읽고 약을 조제해 준 후, 약사는 장부공책에 역시 수기로 오늘 어떤 약이 얼마나 팔렸는지 재고를 기록한다. 이런 처방전을 사진찍고 기록하는 것은 법적으로 의무였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만약 약국에서 어떤 약이 얼마나 팔린지 알 수 있다면 제약회사가 군침을 흘릴만한 데이터인 것이다. 

제약회사 남자는 모바일이라는 기류에 올라탔다. 컴퓨터로 연동시키고, 소프트웨어를 깔게 하는 것은 이 영세 업자들에게 너무나 큰 투자였다. 하지만, 이런 영세업자들 조차도 모바일 하나씩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아주 간단한 형태의 앱을 만들었다. 의사의 처방전을 약사가 사진으로 찍기만 하면, 자동으로 전자화되어서 기록이 되는 것이다. 

물론, 테크기업의 시작이 늘 그러하듯 Fake it Till Make it 이었다. 회사에는 사진의 글자를 읽을 수 있는 OCR기술이 없었다. 그래서 의사들의 엉망진창처럼 보이는 글씨를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고용했고, 그 사람들은 컴퓨터 뒤에서 약사들이 사진찍어서 보내오는 처방전들을 타이핑했다. 사용자들은 편리함에 쓰기 시작했고, 회사는 필리핀 전국의 약국의 처방전의 데이터가 쌓이기 시작했다. 경쟁자는 없었고, 빠르게 성장한지 몇년 후, 드디어 필리핀 정부가 제의를 해왔다. 회사가 쌓고 있는 데이터를 정부에게 주면, 정부는 전국의 약국이 이 회사의 앱을 쓰는 것을 의무화 시키겠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 회사는 필리핀의 모든 약국의 처방전 데이터를 다 갖게 되었다. 

비즈니스 모델은 그 위에 붙이기만 하면 되는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제약회사에서 약국을 대상으로 프로모션을 하고 싶을 때, 과거에 영업사원이 약국 하나하나 방문하던 것에서, 지금은 모든 약국에 이 앱을 통해서 주문을 받게 할 수 있다던가, 아니면 설문조사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회사는 인도네시아에도 진출했고, 아주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거기서 CFO로 CEO와 다른 회사에 투자도 하고 여러모로 재미를 본 친구는 지금은 그 회사를 나와서 가업인 전자칩을 만드는 회사를 물려받았다. 싱가폴처럼 인건비, 땅값, 모두가 비싼 곳에서 제조업이라니… 그가 회사를 물려 받았을 때 상황은 좋지 않았다. 

그런 존을 몇주전에 만났다. 그가 제조업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특히 이런 코로나 사태를 맞아서 어떤지, 더더욱.

놀랍게도 그의 제조업은 굉장히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했다. 왜냐면 존의 회사는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자산을 가져가지 않는 asset free 모델로 재개편 했기 때문이다. 존은 자기 사업에서 핵심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고 한다. 그것은 IP(Intellectual Property)였다. 기술특허, 그리고 from Singapore 이라는 브랜드 이 두개 정도였다. 그리고 실질적 생산은 해주겠다는 곳이 너무 많았다. 공장과 생산시설은 굉장히 무거웠다. 유지, 보수 비용도 비쌌고, 무엇보다 여차할 때 감당해야할 리스크가 컸다. 그래서 그는 IP관련된 생산시설만 말레이시아로 옮겨서 비용을 절감하고 그 외의 모든 부분들은 다른 공장에 외주를 줘버렸다. 

회사가 asset light 해졌기때문에, 코로나로 인한 타격은 있어도, 그의 경쟁사만큼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는 오히려 이 상황이 조금 길어져도 자기에게는 크게 나쁘지 않다고 말했다. 버티지 못하는 경쟁사들이 떨어져 나갈테니까. 

It is all about the value per sq. (모든 것은 평당 가치로 귀결돼)

1차산업으로 보자. 농사를 짓는다고 해보자. 너는 쌀을 짓는 농사꾼이야. 근데 너가 쌀을 농사짓던 똑같은 평에 블루베리 농사를 시작한다고 해봐. 근데 땅 한평에서 나오는 쌀보다 블루베리는 더 고부가가치 작물이기 때문에 너는 같은 땅에서 더 많은 돈을 벌게 될거야. 맞지?

이제 2차 산업을 보면, 그 땅 한평에서 블루베리 농사를 짓는것보다는 아이폰이나 다이슨 청소기 같은 manufactured goods를 생산하면 그 땅 한평에서 나는 가치는 더 높아지겠지?

3차는 서비스야. 의사나 펀드매니저, 변호사등 전문직들의 서비스는 그 작은 땅 한평에서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해내지.

그런데 더 좋은게 있어. 그건 바로 기술이야. 3차처럼 아주 작은 sq을 차지하지만 가치는 굉장히 높지. 그런데 더 나은점이 있어. 기술은 더 생산을 하기 위해 한명을 더 고용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테크는 잠을 자지 않아.

이게 싱가폴 정부가 디지털화, 기술력 강화로 계속 추구해가고자 하는 방향이지. 작은 이 국토의 평당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시스템을 만들어서, 혹은 시스템의 헛점을 이용해서 최소한의 투자 (그게 나의 시간이든 돈이든)로 풍족할만큼의 효과를 내어 먹고사는 작은 창업가들이 늘어나는게 느껴진다. 배가 아프게도 걔들은 영리하게 똑똑하고, 그리고 그렇게 바쁘게 일하지 않는다. 

만석꾼에서 시작해서 현대를 일으켰다는 정주영 회장, 설탕 팔아서 삼성을 만들었다는 이병철 회장 등 굵직한 산업화 시대의 “임자 해보긴했어?” 타입의 무대뽀 영웅들의 스토리는 오늘 날 얼마나 활용가능할까? 

오늘날은 이미 디지털 시대의 인프라를 구축한 테크 공룡기업들 – 아마존, 구글, 페이스북이 이미 테크의 시대를 선점했기 때문에 그들을 뛰어넘는 넥스트 구글이 나오기는 굉장히 어려울 것 같다. 그렇지만, 그 시스템을 잘 이해하고, 그 위에 자기만의 시스템으로 돈을 버는 작은 창업가들의 시대가 오지 않았나 싶다. 

나는 어떤 평당 가치를 만들고 살게 될까? 

그리고 나는 왜 기술을 전공하지 않았나!!!ㅅ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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